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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 경제 이야기 109

경영학 : 한국의 기업가 13, 셀트리온 서정진

모든 것을 다 걸어 성공한 ‘셀트리온 서정진’ ‘제육볶음과 도토리묵’서정진 회장에게 최고 무서운 것은 은행이 문 여는 것이었다. 사채를 빌려 이자를 막는 돌려막기가 언제 끝날지 모르게 계속되었다. 결국 그는 삶을 마감하는 것 외에 달리 방법이 없다고 느꼈다. ‘어떻게 죽지?’ 인터넷을 검색해 보았다. 자살사이트가 많은 것에 놀랐고, 사이트마다 정보가 풍부한 것에 또 놀랐다. 한강에 가 보았다. 교각이 커 보였다. 떨어지다 부딪히면 몰골이 처참해질 것 같았다. 가족과 직원들에게 그런 모습은 보이고 싶지 않았다. 목을 맬까? 체중이 너무 나간다. 줄이 끊어지면 낭패다. 결국 차로 강에 뛰어들기로 했다. 양수리에 갔다. 집에 전화를 걸었다. 유언을 말하는 데 아내는 그게 유언인지 못 알아들었다. 이 세상 마지..

경영학 : 한국의 기업가 12, 아모레퍼시픽 서경배

개성상인의 후예 ‘아모레퍼시픽 서경배’ '핸드백 속 립스틱' “전 세계 사람들 핸드백 속에 우리 립스틱이 하나씩 있다면 진짜 좋을 것 같지 않아요?”직원들과 점심을 먹던 서경배 회장이 불쑥 말했다.“예? 아, 예…”직원들은 그럴 수 있으면 좋겠지만 너무 비현실적인 꿈이라고 생각했다. 로레알, 랑콤, 샤넬, 클라란스, 에스티 로더, 시세이도… 프랑스, 미국, 일본 유수의 화장품 브랜드가 끝없이 뇌리에 떠오른다.‘세계 최고라니 남의 나라 일이 아닌가? 열심히 일하자는 말씀이시겠지.’말없이 젓가락을 입에 가져가는데, 서 회장이 말을 잇는다.“우리가 다 같이 하면 해낼 수 있지 않을까요? 우리만의 기술, 우리만의 재료, 우리만의 이야기로 제품을 잘 만들면 분명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이 있다고 봅니다. 특히 우리의 ..

경영학 : 한국의 기업가 11, 카카오 김범수

시대를 가르는 승부사 ‘카카오 김범수’ "이게 뭐야, 대체?" 대학원생 김범수는 어느 날 후배의 하숙집에 갔다가 그가 컴퓨터로 통신하는 것을 본다. “이게 뭐야, 대체?”“아, 선배 이거 처음 보셨죠? PC통신 서버에 제가 BBS(Bulletin Board System, 전자게시판)를 만들어 놓은 거예요. 여기에 글도 올릴 수 있고, 여기에 들어오는 사람들과 채팅도 할 수 있어요.”“사람들이 여기에 글을 올리고 채팅을 한다고? 그런 상호작용이 일어날 만큼 사람들이 많이 들어오는 거야?" PC통신을 처음 접한 이 경험은 김범수의 인생을 바꾼다. 3개월여 동안 후배 하숙집에 붙어살며 이 새롭고 신기한 세상을 배웠고, 대학원 졸업논문도 PC통신에 관해 썼으며, 컴퓨터를 원 없이 쓸 수 있는 회사를 찾아 삼성S..

경영학 : 한국의 기업가 10, 네이버 이해진

모두가 연결된 세상을 꿈꾸는 '네이버 이해진'"사업은 대포가 아니라 미사일입니다." 이해진 의장은 열정의 중요성을 강조한다."타겟을 잡아도 사용자가 계속 변하고 환경도 변하며 경쟁자도 나타나고 모든 것이 변합니다. 목표물을 잡고 쏘는 대포가 아니라 끝까지 추격하는 미사일이어야 명중할 수 있습니다." 결국 IT분야는 서비스하는 팀의 열정이 더 중요합니다. 맨 처음에 하려고 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사업이 진행되는 경우도 많은데, 결국 그걸 성공하게 하는 건 열정을 가진 사람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열정은 곧 몰입이고, 몰입해야 이용자 마음을 읽으며, 이용자 마음을 읽어야 수익모델이 나온다는 것이다. 인터넷 서비스 기업의 수장다운 논리다. 이해진(1967~) 네이버㈜ 창업자 중 일인으로서 현 이사..

경영학 : 한국의 기업가 9, 대우그룹 김우중

세계경영, 샐러리맨의 우상 '대우그룹 김우중'"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 졸업하고 취직할 건가?” “네.” “기왕이면 우리 회사로 오지 그래.”“대우는 싫습니다.”“왜?” “대우는 일을 너무 많이 시키잖아요.”“그러면 어디 취직할 생각인가?”“외국인 회사에나 가야겠어요. 거기는 돈도 많이 주고 자기 시간도 많거든요. 한 5년쯤 근무하여 얼마쯤 돈이 모아지면 지금 사귀고 있는 여자 친구와 함께 카페나 하나 차려서 편안하게 살고 싶어요.”. 어느 명문대 졸업반 학생과의 이 대화가 김우중 회장은 못내 불만스럽다. 편한 곳에 가서 돈 많이 벌겠다는 생각이 크게 나무랄 일도 아니고, 카페운영이 해서는 안 될 일도 아니다. 그래도 사회 진출을 앞두고 있는 대학생이, 그것도 제법 좋은 학교에 다니는 대학생이 인..

경영학 : 한국의 경영가 8, 롯데그룹 신격호

정열의 현해탄 셔틀경영 ‘롯데그룹 신격호’ "롯데는 돈 벌어 모두 한국에 보낸다." 일본의 판껌 시장에서 당시 1위 하리스와 치열한 경쟁을 벌이던 일본 롯데 신격호 회장은 깜짝 놀랄 경품을 건다. 껌 포장지에 추첨권을 넣고 당첨자에게 1,000만 엔을 주겠다는 것이다. 오늘날 10억 원에 해당하는 금액이고, 일본 샐러리맨의 33년치 연봉이었다. 누가 그 1,000만 엔의  당첨자가 될지 사회적 반응은 대단했다. 하리스는 ‘롯데는 돈 벌어 모두 한국에 보낸다’는 악성 소문을 퍼트려 일본의 국민감정에 호소하려 했다. 공정거래위원회에 고발도 했다. 그러나 조사 결과 법적으로 문제가 없었고 오히려 매스컴의 관심만 더 자극했다. 롯데는 이 광고로 10억 엔, 즉 100배 이상의 효과를 보았고, 롯데 껌은 천연치클..

경영학 : 한국의 기업가 7, SK그룹 최종현

SUPEX를 경쟁력의 원천으로 승화한 ‘SK그룹 최종현’ 회사를 어떻게 경영할 것인가? 1973년 최종현은 선경그룹의 2대 회장이 되었다. 창업자이자 형이었던 최종건 회장이 폐암에  걸려 48세의 젊은 나이로 유명을 달리했기 때문이었다. 8년 전 최종현 회장이 직접 영입했던   손길승이 건의했다. "기획실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것은 회사가 커 나가기 위한 주춧돌입니다." 최 회장은 한 발 더 나갔다. “그게 하드웨어라면 소프트웨어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소프트웨어요?” "그래요,. 일류기업이라면 경영 무기가 하나는 있어야 합니다. 지금 같은 주먹구구식 경영기법 말고 선진적이면서도 우리에게 맞는 경영기법 말입니다. 두고 보세요. 지금은 설비 경쟁의 시대지만 앞으로는 경영 경쟁의 시대가 올 겁니다." ..

경영학 : 한국의 기업가 6, LG그룹 구인회

'최초, 최고'의 기술을 추구한 "LG그룹 구인회"내 아들 맡기고 갈 테니 사람 하나 만들어 주시오. 1946년 구인회 회장이 해방 후 부산에 터를 잡고 무역업을 위한 ‘조선흥업사'를 설립할 즈음, 사돈집안의 허만정이 자신의 셋째 아들 허준구를 데리고 구 회장을 찾아왔다. 아들에게 경영을 가르쳐달라고 부탁하기 위해서였다. 훗날 ‘아름다운 동업’이라 불리는 구씨와 허씨 두 집안의  동업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구씨는 앞장 서 사업을 경영하고, 허씨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맡은 일만 열심히 하면서 함께     락희(樂喜)그룹을 일구었다. 훗날 구씨와 허씨 집안은 각자의 몫을 나누어 동업을 청산하는데, 구씨 가문의 후손들이 LG그룹과 LS그룹을 맡고, 허씨 가문의 후손들이 GS그룹을 맡는다. 구   회장의 사업..

경영학 : 한국의 기업가 5, 교보생명 신용호

공익과 사업을 함께 일군 "교보생명 신용호""금싸라기 땅에 서점을?" 1980년 당시 서울 최대의 번화가인 종로 1가 1번지에 교보생명 사옥이 완공될 무렵이었다. 모두가 최고의 상권이 될 지하아케이드를 비싼 값에 임대할 것으로 예상하고 연줄을 동원한 자리쟁탈전까지 벌어졌다. 그러나 신용호 회장은 폭탄선언을 했다. 지하공간에 서점을 차리겠다는 것이었다. 반대하는 임직원들에게 신 회장은 역설했다. “… 이 금싸라기보다 값진 땅에 책방을 크게 열어 청소년과 시민이 자유롭게 이용토록 한다면 그 축적된 효과가 어느 정도나 될지 상상해 보십시오. 와서 사람과 만나고, 책과 만나고, 지혜와    만나고, 희망과 만나게 합시다. …" 단일층 면적으로는 세계 최대규모인 교보문고는 그렇게 “서울 한복판에 대한민국을 대표하..

경영학 : 한국의 기업가 4, 유한양행 유일한

사회적 책임을 맨 앞에 세운 '유한양행 유일한'"나는 평생 국가와 교육을 먼저 생각했다." 유일한 : 너에게 있어 우선순위는 무엇이냐? 유일선:  가정의 행복과 회사가 잘 되는 것입니다.유일한 : 나는 평생 국가와 교육을 먼저 생각했다.유일선 : 그건 아버지 시대 얘기입니다. 세상이 변했습니다.이 대화를 계기로 유일한 회장은 아들 유일선을 부사장직에서 해임한다. 기업 이윤 추구라는 교과서적 경영관이 기업인으로서 전혀 틀린 자세는 아니겠지만, 유한양행은 국민 기업이라고 생각했던 유 회장으로서는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던 것이다. 유 회장은 1969년 경영에서 은퇴하며 경영권을 아들이 아닌 일반사원 출신의 전무이사에게 이양했다. 5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유한양행은 전문경영인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유일한(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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